어릴때의 나는 정말 답답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소심했다. 항상 머릿속에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생각들이 멤돌았고 쌓여가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음악을 들을때는 달랐다.
음악을 들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사람들의 두려운 시선없이 그냥 난 '나'일 수 있었다. 사람들에겐 여전히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였지만, 내 머릿속은 내가 존경하는 가수들의 가사들로 꽉 차있었다. 음악 중에서도 힙합에 빠지게 된 이유는 그만큼 힙합가수들의 가사는 짜여진 틀을 벗어나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전해주었다. 난 힙합 가사를 인쇄해서, 또 랩을 따라하면서, 다 외웠다. 밖에선 당당히 할 수 있는게 없던 나에겐, 이 가사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면서 나만의 상상의 무대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에픽 하이, 드렁큰 타이거, 리쌍, 다이나믹 듀오의 음악으로 시작해서 소울 컴퍼니, 더콰이엇, 팔로알토, 피타입, 크루셜 스타, 등 꾸준히 다양한 가수들과 노래들을 찾아 들었다. 4살때 미국으로 이민 와 자라면서 한국말보단 영어가 더 편한 어린 나에게, 한국 가사가 와 닿았다. 모르는 단어들도 검색해가면서 가사들을 꼼꼼히 읽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 가사들은 내가 분명히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말해주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 같이 느끼는 비슷한 감정들, 다 같이 겪는 힘든 순간들을, 그리고 행복한 순간들. 이 모든것이 가사에 담겨져있다. 그래서 음악을 들을 땐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걸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음악은 또 내게 꿈을 꾸게 해줬다. 힙합음악 하기 특히 어려웠던 2000년대 초반에는 힙합가수들이 주로 꿈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다. 꿈이 뭔지도 모를 어린 나에게 꿈을 꾸게 해줬다. 분명 그게 멋있게 보인걸 수도 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사람들의 시선들을 무시하면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것. 다른 시선들을 지나치게 신경 써여하는 하루하루 틈에서 힙합음악이 조그만 탈출이었다.
예전엔 탈출이였다면, 나를 둘러싼 벽이 더 커진 현재에선 음악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어릴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펼쳐도 어른들이 응원해주지만, 나이들수록 그런 상상들이 부끄러워진다. 어릴때의 상상들이 나이 들면서, '어른'이 되면서 환상이 되어버린다.
"자유로운 새 보기엔 아름다운데
그 새가 된 내가 보는 세상은 너무 가혹해"
-"외길," 투게더 브라더스
물론 우린 어른이 되어도 그 상상들을 붙잡을 수 있다. 꿈을 품고 상상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단지 사회가 우리의 꿈을 정해주려 할 때 우리의 진정한 꿈이 뭔지 구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주변에도 꿈은 딱히 없지만 그냥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길을 택하는 친구들이 많다. 꿈이 없는건 잘못된게 아니다. 자기가 잘하는걸 발견하고 그걸 꾸준히 따르는것도 옳은 길이다. 아마 더 똑똑한 선택이다.
"때론 유치한 놈이 가장 진지한 법
남에겐 별거 아닌 일에 두근대니
돈에 먹히지도 야망을 섬기지도 않는 꿈을 꾸는 넌
과감히 길 걷겠지 또"
- "꿈," 지조 (feat. 키비, 효빈)
하지만 음악은 내게 꿈을 품어줬다. 달콤한 꿈을 한번 꾸면 깨어나는게 가장 두렵다. 현실보다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 좋을만큼 깨어나기 싫다. 꿈을 꾼다는건 참 바보같은 짓이다. 그래서 나에게 음악은 정말 원망해야 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올바른 어른들보다는 차라리 바보로 살아가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꿈을 쫓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있지만, 우리의 꿈을 쫓는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과 행복이 그 어떤 교훈보다 소중하니까.
"가끔씩 뭘하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지
또 왜 하고 있느냐고 쉴틈없이
알 수 없지 나도 그냥 이걸 하고 있을 땐 전혀
세상이 두렵지 않으니까 그 뿐이였지"
- "Love People Love Music," 더콰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