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당초 없었으면 괜찮았잖아"

꿈에 그리던 자취를 하게 됐다.
미국에 있는 가족을 떠나 한국에 와서 할머니랑 둘이
1년 넘게 살다가 할머니 집을 나오게 됐다.
그동안 불편했던 점들, 할머니의 코 고는 소리,
침대가 없어서 잤던 딱딱한 바닥,
핸드폰에서 유튜브나 카카오톡 쓰는 방법을 몰라서
날 귀찮게 했던 질문들,
할머니가 끓이던 온갖 이상한 음식의 냄새들,
새벽 6시에 나를 깨우던 밥솥 소리.


익숙해졌던 점들, 아침에 일어나면 풍기던 따뜻한 밥 냄새,
할머니 혼자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며 웃던 소리,
밤 늦게 들어가도 코 골며 누워있던 할머니의 모습.

익숙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달았다.

내가 떠나는 날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애시당초 없었으면 괜찮았잖아, 애시당초 안 왔으면..”
할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